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환(李明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086
  • 전몰일자 : 19530625

공훈사항

이명환 일병은 경기도 이천군 당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1년 1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3사단 제2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 제3차 공세에 밀려 37도선 일대로 철수하여 전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제3사단은 평창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평창, 횡성, 현리, 인제 일대를 오르내리며 1951년 4월까지 중공군 제3~5차 공세에 맞서 공방전을 펼쳤다. 중공군 5월 공세 때 연대는 현리에서 적에게 포위당하여 하진부리로 철수했다. 현리전투 결과로 5월 25일 제3군단이 해체되고, 제3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5월 말 양양, 간성 일대에 배치되어 10월 19일까지 제1군단의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했다.
사단은 10월 20일부로 미 제10군단으로 배속이 전환되었고, 양구 동북방 가칠봉으로 이동하여 그 북서방의 1,211고지에서 공방전을 펼쳤지만 결국 이 고지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사단은 1952년 1월 12일 미 제9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백석산 서북방 임남 일대의 북한강~949고지~석장리 간의 제6사단 진지를 인수했고, 4월 5일 재창설된 제2군단이 미 제9군단의 전선을 인수함에 따라 사단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1953년 4월 2일 중공군은 국군의 금성 돌출부에 대한 본격적인 하계공세를 시작하기 전에 서전으로, 사단 주저항선인 949고지, 973고지의 전초가 설치된 689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했다. 연대 장병들은 중공군 제181사단의 공격을 맞아 12일까지 8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는 혈전을 거듭한 끝에 이 고지를 지켜냈다.
사단은 6월 15일 제2군단에 배속되어 화천군 백암산 전방 북한강과 금성천 분기점 상의 529고지(관망산) 전투에 투입되었다. 중공군 제180·제201사단은 6월 25일 공격을 개시했고(6월 공세), 사단은 7월 3일까지 7차에 걸쳐 역습을 감행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이 고지를 적에게 내주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진지를 지키며 분전하다 6월 25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29-ㄹ-03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