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환(李明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08861
  • 전몰일자 : 19510525

공훈사항

이명환 일병은 1923년 10월 21일에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반격작전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했던 1950년 11월 8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6사단은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두 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하여 전곡-백의리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얼마 후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서울을 향해 공격했다. 이에 제6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양평 부근 판부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한 후 반격으로 전환하여 3월 6일에 횡성 부근까지 진출했다.
제6사단은 1951년 3월 13일 용문산 남쪽의 광탄리로 이동하여 홍천강 남쪽 산악지대로 공격하라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고, 3월 22일부터 캔자스선(38도선 북쪽 2km)을 확보하기 위해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작전을 개시했다. 그가 소속된 제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 공격했다. 그 결과 4월 6일에 사창리 남쪽의 화악산 일대(지암리 부근)까지 진출하여 방어태세로 전환하고, 차후 공격을 위해 부대정비를 했다.
제6사단은 4월 20일에 대성산-육단리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재개하여 사창리까지 진출했으나, 이때 중공군의 4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사단은 사창리에서 후방이 차단되는 등 위기에 직면했으나 적진을 돌파하여 전열을 정리한 다음 가평 부근으로 철수했다가 4월 27일에 용문산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제7, 제19연대를 용문산에 배치하고 제2연대를 홍천강 남쪽에 전초진지로 추진 배치하였다. 이에 5월 16일에 중공군의 5월 공세가 시작되자, 전초진지에 배치된 제2연대는 전면방어를 하며 사수하여 적에게 큰 손실을 입혔고, 이에 이명환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제19연대와 함께 주방어진지인 용문산에서 5월 20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하여 도주하는 중공군을 추격했으며, 5월 24일부터 계관산-북배산 방향으로 공격하여 25일에 북배산을 공격했다. 이날 이명환 일병은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이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4742 육)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56묘역-5판-3751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4-ㄹ-00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