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환(李明煥)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85697
  • 전몰일자 : 19520430

공훈사항

이명환 이등중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최후공세를 힘겹게 저지하던 시기인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1사단 제9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명환 이등중사가 부대로 전입했던 10월 하순, 제9연대는 9월 30일 대구에서 창설되어 경상남도 지리산 동남쪽 지역에 대한 공비토벌작전 임무를 부여받고 10월 4일에 산청지역으로 이동했다. 당시 제9연대는 상급부대 작전지침인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 개념에 의거 산간벽지에 있는 민간인들을 소개하고 공비들의 보급로를 차단해 적을 기아 상태에 몰아넣는 한편,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여 공비 소탕에 주력했다. 그리고 1951년 1월 1일부터 4월 초까지로 게릴라의 근거지를 파괴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제9연대는 1951년 3월 17일 화학산 일대에서 게릴라 지도급 인사를 포함하여 86명의 게릴라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이후 게릴라가 세력으로 활동하는 것은 없었다.
이명환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11사단은 4월 6일에 국군 제8사단에게 작전 임무를 인계하고, 4월 중순에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였다.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4월 공세와 5월 16일부터 시작된 공산군의 5월 공세를 대관령-강릉 선에서 저지하고 5월 22일부터 반격하여 6월 중순까지 향로봉-건봉산을 잇는 선을 확보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제11사단은 11월 17일에 수도사단으로부터 월비산 방어지역을 인수하였고, 이 지역은 이명환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9연대가 맡았으나, 바로 다음 날인 11월 18일에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11월 24일까지 공방전이 있었다. 그 결과 제9연대는 방어에 불리한 지역인 월비산을 다시 빼앗기고 351고지로 철수했다.
제11사단은 1952년 1월 중순에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교육훈련에 전념하다가, 3월 30일에 다시 건봉령-건봉산 일대의 방어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4월 30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0묘역-2판-1643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3-ㅁ-08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