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호(李明鎬)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704089
  • 전몰일자 : 19500902

공훈사항

이명호 하사는 1929년 9월 9일에 출생했다(출생 장소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2월 30일, 충북 청주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1949년 5월 6일에 춘천으로 이동하여 제6사단에 예속되었다.
이명호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 축선을 담당했다. 연대 장병들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 방어진지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제2사단은 약 1시간에 걸친 공격준비사격으로 아군 방어진지를 무력화한 다음에 SU-76자주포를 앞세우고 공격해 왔다. 연대 장병들은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6월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시켰다.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를 개시하여 원창고개를 거쳐 6월 30일에 원주로 철수했고, 7월 1일에 충주로 철수 했다. 그리고 7월 4일 음성으로 급히 투입되어 북한군의 진출을 지연시켰다. 이후 7월 14일부터 31일까지 이화령과 조령 등 문경 일대와 점촌 –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과 맞서 진출을 지연시켰다.
제6사단은 8월 3일에는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한편 북한군은 8월 5일에 낙동강을 도하하였고, 8월 10일 새벽 3시에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을 도하하여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단은 철수하여 신령 북방 고지군에 배치되었다. 이명호 하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8월 29일 오전 신녕에 도착하여 바로 공격을 개시했다. 화산은 신녕 일대를 방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형이었다. 먼저 중간목표인 228고지를 점령하고, 8월 31일에 적정을 고려하여 야간에 화산을 공격했다. 그동안 완강하게 저항하던 북한군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않고 분산되어 철수했다.
제7연대는 예상외로 손쉽게 목표를 탈취한 후 적의 역습에 대비하여 방어진지 강화에 착수했다. 그런던 중 북한군 제8사단은 9월 2일에 화산 방어진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는데, 적들의 최후 결전인 9월 공세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호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유해(44묘역-5판-1326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ㅁ-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