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호(李明鎬)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183590
  • 전몰일자 : 19520422

공훈사항

이명호 이등중사는 1923년 3월 27일에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으로 후퇴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하던 1950년 12월 30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육군직할 제8경비대대로 배치되었다.
제8경비대대는 수도권 일대의 후방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무장공비의 토벌과 도로경비, 후방방호와 치안확보, 포로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압록강 및 두만강으로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철수하여 1950년 12월 말에 다시 38도선 일대의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러나 중공군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제8경비대 부대원들은 12월 31일 시작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로 인해 서울을 포기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엄동설한 속의 1·4후퇴이었다.
이명호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은 1951년 1월 초 평택-삼척을 연하는 37도선까지 후퇴하였던 국군은 다시 반격을 시작해 2월 10일에는 한강 남쪽에 도달했다. 제8경비대도 국군의 진격에 맞추어 수도권 일대에서 후방지역 방호작전을 재개했다.
국군은 1951년 3월 15일에 제1사단을 선두로 서울을 재 수복했다. 이명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경비대도 서울로 진주해 패잔병 소탕작전에 투입되었다. 북한군 무장공비들은 인천상륙작전 당시 후방이 차단되었던 북한군 주력의 일부가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 시기에 잠입한 북한군 제10사단의 패잔병들과 연결해 산악지대에 은거하면서 후방교란활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명호 이등중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생과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용맹을 발휘했다. 그러던 중 1952년 4월 22일에 경기도 안양 관악산 일대에서 적 패잔병이 출현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를 접수한 제8경비대는 즉각 출동하여 적을 격멸했다. 이 전투에서 이명호 이등중사는 추격조 조장으로서 조원들을 지휘통제하면서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여 은거해 있던 게릴라를 발견하고 교전 중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호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11묘역-4판-32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7-ㅋ-062)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