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호(이명호)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6500136
  • 전몰일자 : 19510201

공훈사항

이명호 이등중사는 1927년 4월 21일에 경기도 인천시 만석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나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매우 혼란스러웠던 1949년 6월 1일, 서울 용산의 병참교육단으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직할부대인 병참대로 배치되었다. 그가 소속된 병참소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이명호 이등중사는 병참소대 소속으로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춘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원창고개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6월 30일에 원주-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과 9월에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낙동강 선에서부터 반격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제6사단은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하였고, 10월 23일에 희천을 점령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부터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를 개시했고, 11월 24일부터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함으로써 큰 피해를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초산까지 진격했으나, 결국은 철수하여 12월 11일에 동두천 북방에 전곡-백의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명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병참소대는 장병들의 식량과 탄약 등 전투에 필요한 물자 지원을 위해 노력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목표로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펼쳤다. 이에 제6사단은 방어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다음날인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인접 부대들이 돌파되어 측후방이 노출됨으로써 진지에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그리고 2월 1일에 방어배치 조정에 의거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명호 이등중사가 소속된 병참소대는 차후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식량과 탄약을 예하 부대로 보급했다. 이날 병참소대는 보급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고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으나, 그는 이날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호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7면-3564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ㅂ-04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