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학(이명학)

  • 군별 : 육군
  • 계급 : 대위
  • 군번 : 14876
  • 전몰일자 : 19501223

공훈사항

이명학 대위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202에서 1933년 6월 13일에 출생하였다. 이 대위는 1948년 12월 7일 육군사관학교 제8기로 입교하여 군사훈련 후 1949년 5월 23일 임관하여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대위의 전입 당시 제8사단 제10연대는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의 경계를 담당하며 후방에 침투하는 적 유격대에 대한 토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 대위가 소속된 제8사단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강릉지구전투에 투입되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압도적인 공세에 밀려 대관령, 죽령을 넘어 소백산맥을 경상북도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며 철수하게 되었다. 그 후 1950년 9월 낙동강 전선에서 반격을 개시하여 10월에는 38도선을 통과하여 북진을 거듭하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제8사단은 1950년 12월 1일 제2군단의 집결지인 평양 동쪽의 상동에서 38도선을 향해 철수를 거듭하여 율리에서 수안을 거쳐 신계, 시변리를 경유했다. 토산에 도착한 제8사단 장병들은 38도선의 바로 북방에 위치한 연천으로 집결하기 위하여 3일간의 휴식을 마치고 1950년 12월 9일 토산을 출발하였다. 중공군 2개 대대는 국군의 도하를 방해하고자 토산 동북방 능선 일대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연천을 향해 철수하는 제8사단과 뒤따라오는 국군을 향해 일제히 사격하였다. 북한군은 철수하는 국군을 섬멸하기 위해 철수로를 차단한 후 집중적인 사격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이 대위가 소속된 제8사단 장병들은 병력과 장비가 열세한 와중에 경기도 연천 부근의 요충지인 520고지를 향하여 돌진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열세한 상황에서 적을 추격하였지만, 좌·우측방으로부터 끊임없이 공격하는 북한군을 상대로 방어하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제8사단은 치열한 교전을 통해 520고지를 최종적으로 확보하였다. 그러나 북한군은 여전히 520고지 일대를 재탈환하기 위해 지속해서 국군의 방어진지를 침투하며, 야간 공격도 감행했다.
중공군의 세 번째 공세에서 피아간에 많은 전사자가 발생했고 추후의 공세 전까지 제8사단의 연대는 520고지 일대 능선에 각각 배치되어 산병호를 구축하고 날이 저물어도 사주 경계에 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대위는 방어진지를 사수하는 과정에서 북한군과의 전투 중 총탄에 맞아 1950년 12월 23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학 대위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47판-3면-07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9-ㅊ-05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