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출(이명출)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K1125165
  • 전몰일자 : 19510221

공훈사항

이명출 이등중사는 1928년 9월 5일에 경상남도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반격을 준비하던 1950년 9월 12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3사단으로 배치되었다.
이명출 이등중사는 10월 중순에 일본으로 건너가 미 제3사단 장병들과 함께 한반도로 투입될 준비로서 실질적인 훈련을 했다. 이어 미 제3사단은 11월 5일에 일본을 출항하여 11월 17일에 원산에 상륙함으로써 6·25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미 제3사단은 원산의 항만과 비행장을 방호하다가 예하 제65연대는 미 제2사단을 증원하기 위해 서부로 이동했고, 감소된 사단은 11월 20일에 함흥으로 이동하여 흥남 교두보 방어선을 점령했다.
당시 미 제1해병사단이 장진호지구에서 철수하여 12월 11일에 함흥지구에 집결 완료함으로써 미 제3사단은 국군 수도사단 및 미 제7사단과 함께 본격적으로 교두보작전단계로 들었다. 미 제1해병사단이 피해가 극심하여 제1순위로 12월 15일에 해상철수하였고, 국군 수도사단이 12월 16일, 미 제7사단이 12월 18일에 철수하고, 미 제3사단이 12월 24일에 제일 마지막으로 흥남항에서 철수했다.
이명출 이등중사가 소속된 미 제3사단은 부산항에 도착한 후 부대정비를 하다가 중공군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유엔군이 전반적으로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7일에 평택으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1월 25일에 개시된 선더볼트 작전 시에 남한산성 방향으로 공격하여 2월 10일에 한강 이남 지역을 확보했다. 그리고 2월 11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로 공격을 중지하고 방어로 전환했다.
미 제3사단은 재반격작전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후방지역으로 침투하는 적 침투조를 소탕하기 위해 주기적인 수색작전을 실시했다. 그러던 중 그가 소속된 소대는 2월 21일에 수색작전을 하다가 적 침투조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출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128-ㄷ-00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