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찬(李明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4226
  • 전몰일자 : 19500803

공훈사항

이명찬 일병은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으로 후퇴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을 때인 1950년 8월 3일 육군에 입대하여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당시 사단은 초기전투에서 많은 손실을 입고 부대의 재편과 보충을 통해 전쟁 전의 수준을 회복하였으나 대부분 신병이어서 전투력이 미약한 상태였다. 그 시기에 입대하였던 장정들은 기초 군사훈련 과정조차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전선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명찬 일병 역시 간단한 소총 조작법만을 익힌 후 전선에 배치되었다.
이명찬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북한군 제12사단이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침공하여 포항을 점령하자 기계 일대에서 강력한 방어 작전으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고 있을 때였다. 이명찬 일병은 기계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와 연대병력은 북한군 제12사단의 기습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방어선이 와해되면서 의성 일대로 분산 철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북한군 제12사단은 방어공백지대를 이용하여 거의 저항을 받지 않은 채 기계를 향해 남진하기 시작하였으며 8월 3일 기계를 점령한 후 포항으로 전진할 때까지 거의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이미 보현산 일대에 침투한 제766부대와 연결을 지으면서 전차 및 지원포병으로 증강된 1개 연대 규모의 병력을 투입하고 주력을 후속시키고 있었다. 맹렬한 포화의 연속으로 고지의 형태마저 변형된 듯하였으며 쌍방 간에는 많은 병력손실이 있었다. 교전이 거듭될수록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급기야 탄약마저 떨어져 철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에 불과하지만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전투에 임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명찬 일병은 1950년 8월 3일 기계 부근 전투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던 중 북한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18판-2면-2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2-ㄹ-06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