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찬(이명찬)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211527
  • 전몰일자 : 19520118

공훈사항

이명찬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시 지성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9월 11일, 경남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배치되어 조교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한 이래로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각 도에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에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에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이후 교육대는 8월 14일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개칭되었다. 같은 날 부산에 육군 제2훈련소가 창설되고, 이어 육군 제3·5·6·7훈련소가 창설되었는데, 이중 육군 제5훈련소는 8월 22일 제주도 모슬포에서 창설되었다.
이명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0년 10월 중순, 육군 제5훈련소는 신병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방위 임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당시 제주도에는 제주 4·3사건(1948년 4월 3일 발생) 때 한라산으로 도피한 좌익 빨치산 잔당들이 북한군의 남진에 고무되어, 수시로 출몰하여 지서나 관공서 등을 습격, 파괴했다. 이때마다 제주도에 주둔한 해병대사령부나 제주도경비사령부(8월 28일 설치) 병력 또는 육군 제5훈련소 기간요원은 적 게릴라가 교란 활동을 할 때마다 출동해서 이들을 소탕하곤 했다.
이명찬 일병은 신병교육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서도 훈련소 기동타격대로 편성되어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앞장서 왔다. 그리고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이어졌으나, 후방교란은 여전히 활발했다. 그러던 중 1952년 1월 18일 한라산 중턱에 적 게릴라가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그가 소속된 기동타격대는 즉각 출동하여 적 게릴라들을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843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ㄱ-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