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진(李明珍)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699421
  • 전몰일자 : 19521021

공훈사항

이명진 하사는 1924년 1월 15일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전선이 교착되고 휴전협상이 진행되는 시기에,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1952년 2월 26일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았다. 이 하사는 동 훈련소 조교로 선발되어 신병교육에 전념하다 제51교육보충연대가 창설되면서 이 연대로 전속되었다.
한편, 1951년 7월 10일 최초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회담이 진행되자, 한·미는 미군 재보충이 어려운 상황과 휴전 후의 한국 국방을 고려하여 1952년 초부터 육군을 10개 사단에서 20개 사단으로 증편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1952년 4월 28일 3개의 경장비 교육보충연대(제37·38·39연대)가 창설되었고, 6월 13일 다시 같은 성격의 3개 연대(제50·51·52연대)가 창설되었다. 이 중 제50연대는 함양지구 공비토벌작전에 투입되었고, 제51·52연대는 독립연대로서 미 제1군단과 국군 제2군단에 각각 배속되어 실전훈련을 쌓으면서 군단 예비 임무를 수행했다.
이 무렵 전선 상황은 휴전회담이 진행됨에 따라 공산군 측이나 유엔군 측 모두 대규모 공격작전을 전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진지나 주저항선 상의 주요 지점에 대한 소규모 전투만이 진행되었다. 특히 공산군 측과 유엔군 측이 1951년 11월 27일 휴전회담에서 “현재 접촉선을 군사분계선으로 확정”하기로 함에 따라 현 전선에 대한 진지강화와 더불어 유리한 전초진지 확보를 위한 고지쟁탈전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제51연대가 소속된 미 제1군단은 문산, 동두천 축선을 담당했는데, 1952년도에는 문산 근처의 두매리 고지 전투와 사천강 부근 전초진지 전투가 있었지만, 대규모 전투는 없었다.
제51연대는 군단의 예비로서 교육훈련을 하면서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여 수색정찰과 보급로 확보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적은 정찰대를 투입하여 군단 후방지역에서 첩보수집, 습격·파괴활동과 교란작전 등을 전개했고, 이에 대응하여 제51연대가 투입되었다. 이 하사는 1952년 10월 21일 경기도 동두천 일대에서 보급로 경계작전 중 적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진 하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려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3956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74-ㅎ-08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