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직(이명직)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1933
  • 전몰일자 : 19500928

공훈사항

이명직 일병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가정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침투 및 교란으로 사회가 혼란하던 1950년 3월 하순에 옹진반도의 제1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연대는 64km의 정면에 2개 대대를 배치하고, 1개 대대는 예비로서 옹진 부근에 집결시켰다.
제1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옹진반도에서 북한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소부대별로 분산되었고, 다음날 인천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7월 중순에는 화령장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 예하 1개 연대를 궤멸시키는 대전과를 획득했다. 이후 연대는 7월 말에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하여 육군 예비로 있다가 8월 11일부로 안강 지역에 도착하여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되었다.
이명직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는 이곳에서 9월 3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의 공격을 격퇴하여 낙동강방어선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북한군 제12사단은 9월 2일에 일제히 공격을 개시하여 기계-안강 방향으로 진출했다. 적들은 당일에 기계를 탈취하고 9월 5일에 안강을 탈취했다. 이에 연대 장병들은 안강을 적에게 내어주고 곤계봉-호명리 선으로 철수했다. 제17연대는 곤계봉을 두고 적들과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으며, 9월 13일에 최대 격전지였던 곤계봉 탈환에 성공하여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이후 제17연대는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9월 14일에 부산으로 이동하여 상륙함정에 승선했다. 이후 미 제7사단에 배속되어 9월 18일에 인천으로 후속상륙한 후에 영등포 남쪽으로 기동하여 서울의 동쪽 지역을 탈취하고자 했다. 연대는 9월 25일 오후 2시에 미 제32연대에 이어 신사리에서 서빙고로 한강을 도하했다. 이명직 일병은 장병들과 함께 도하 즉시 남산으로 진격하여 적의 경미한 저항을 물리치면서 보광동 일대와 매봉(174고지), 그리고 무학여고가 내려다보이는 고지 일대를 점령하고, 9월 27일까지 망우리ᐨ면목동 일대에 진출했다.
제17연대는 9월 28일 아침 잔적을 소탕하며 서울 중심지로 입성하여 밤 12시를 기해 중앙청 및 경무대 경비 임무를 한국 해병대로부터 인수했다. 이명직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서울 시내로 진입하면서 잔적 소탕을 실시했는데, 이날 전투에서 그는 작전 중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직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6판-8면-19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7-ㄱ-01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