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중(李明中)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66504
  • 전몰일자 : 19530301

공훈사항

이명중 이등중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서 1930년 2월 5일에 출생하였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이 이등중사는 1951년 11월 24일에 입대한 후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8사단 제2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전입할 당시, 제8사단은 백야전전투사령부에 편성되어 1951년 11월 말 전라북도 남원군으로 이동해 1951년 연말부터 1952년 2월 초까지 지리산 일대의 공비토벌에 나섰다. 특히 공비토벌중 제3기 작전에서는 전라북도 순창군 회문산 일대에 잠복중인 공비를 소탕했는데 공비 1,715명 사살, 1,972명 생포라는 큰 전과를 기록했다.
제8사단은 공비토벌작전 종료 이후 1952년 3월 다시 미군 제10군단에 배속 전환되어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으로 이동하여 미 해병대 제1사단의 노전평 북방 854고지, 812고지 작전지역을 인수했다. 이후 제8사단은 북한군과 대치한 상황에서 진지 보수에 치중했다. 제8사단 장병들은 1952년 9월 21일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받았다. 이에 일시적으로 854고지를 점령당하기도 했지만 제8사단 장병들은 미 해군, 공군의 화력지원을 받아 1952년 9월 21~22일간 북한군 제45사단의 공격을 저지할 수 있었다.
제8사단은 1952년 10월 25일 강원도 김화군으로 이동하여 수도사단으로부터 수도고지 일대의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수도고지는 1952년 9월간 국군수도사단과 중공군 제34사단, 제35사단 간에 수차의 공방이 벌어졌던 해발 600m 능선상의 고지이다. 수도고지는 그 위치나 규모로 보아 다만 전초에 불과했다.
오히려 수도고지는 적 주저항선의 700m 고지들보다 낮아 적의 감제관측을 허용하여, 주간에는 진지공사나 보급추진 등이 불가능한 곳이었다. 그러나 수도고지는 피아간의 전략적 요충지로 여겨져 주요 결전장이 되어 왔고 이러한 연유로 결코 상실해서는 안 될 고지로 인식되어 동굴 진지로 구축되었다. 제21연대는 수도고지 인수 이후 진지 방어와 일대의 수색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 이등중사는 1953년 3월 1일 진지 순찰 도중 북한군의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중 이등중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장병1묘역-116판-6587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4-ㅋ-019)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