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준(李明俊)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5400
  • 전몰일자 : 19520126

공훈사항

이명준 일병은 1928년 10월 17일에 경기도 시흥군 서면 광명리(現 광명시 광명동)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중공군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이 다시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2월 8일 입대하여,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병기중대로 배치되었다.
이명준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의 전황은 북진작전에 참가했던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 부대들이 중공군에 의해 후방이 차단되어 철수하면서 38도선 상의 진지를 점령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제5사단은 춘천 동북방 탑두울-배후령 간을 점령하여 방어준비 중에 있었다.
1951년 접어 들면서 사단은 가평-횡성-영주-안흥 일대를 오르내리며 격전을 치르면서 중공군의 제3차 공세(신정공세)와 2월 공세를 막아냈다. 중공군 2월 공세 이후 사단은 강원도 영월군 주천리 일대 새로운 방어진지를 편성했으며, 국군 제1군단에 배속되어 단양-풍기 간의 주보급로 경계임무를 수행하며 부대를 정비하면서 수색정찰 활동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후 사단은 美 제10군단에 배속되어 태기산 전투(3월), 소양강-인제지역 전투(4월), 홍천북방지역 전투(5월), 현리-서화지역 전투(6월) 등에 참가하여 중공군 춘계공세를 저지했다. 이로써 사단은 장평-봉화봉을 잇는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진격하면서 반격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8월에 접어들어 美 제10군단은 南으로 만곡부를 이루는 전선을 北으로 밀어 올리기 위해 강원도 양구 일대 해안분지(펀치볼) 확보작전을 실시했다. 이에 따라 이명준 일병이 소속된 사단은 가칠봉 전투에서 9월 5일부터 10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북한군 3개 사단과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1,211고지를 적에게 내주었다. 그러나 사단은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냈으며, 현 진지를 10월 20일 제3사단에게 인계하고 육본 직할로 전환되어 강원도 양양으로 이동했다.
그 후 사단은 1952년 1월 13일부로 제1군단에 배속되어 23일부터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강원도 거진 일대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명준 일병은 병기병으로서 예하부대 병기 보급과 정비 중 적 포격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준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04판-5면-03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설치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2-ㅂ-018)에 그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