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주(李明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등중사
  • 군번 : 8201338
  • 전몰일자 : 19501126

공훈사항

이명주 일등중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1949년 7월경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자 제2사단 제25연대에 입대하여 복무하다 제7사단으로 전속되어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제8연대는 1950년 6월 20일 홍천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수도경비사령부로 예속되었고, 이동한 지 이틀 만에 전쟁을 맞았다. 연대는 김포, 영등포 일대에서 적과 싸웠고, 진천-미호천-보은-안동 일대로 지연전을 펼치다 전투력의 소진으로 7월 23일 해체되었다. 8월 20일 연대는 제7사단 예하부대로 재창설되어 신녕지구 전투와 영천전투에서 적의 돌파를 저지하고 영천을 탈환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최대 위기를 극복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국군은 9월 16일부로 반격작전으로 전환했다. 9월 19일 연대는 수도사단 제18연대와 함께 합동으로 기계 일대를 공격해서 점령했다. 국군은 9월 22일부로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이때 연대는 제8사단을 후속하여 경주-안동-문경-충주를 거쳐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율리를 거쳐 18일 승호리 일대에서 대동강을 건너 김일성대학과 모란봉 일대로 진격했다. 연대는 20일 북한군 제17, 제32사단의 잔적을 소탕하고 평양을 탈환했다. 이로써 연대는 제1사단과 더불어 최초로 평양을 점령한 부대가 되었다.
10월 29일 북진을 계속한 연대는 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연대는 11월 1일 공격을 개시했으나, 중공군의 역습에 밀려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 일대를 점령하여 방어태세에 들어갔다. 3일 연대는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7일까지 적과 고지를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비호산을 지켜냄으로써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최초로 승리했다.
11월 14일 연대는 덕천으로 진격했고,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계획에 따라 11월 22일 묘향산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연대는 26일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 제38군과 제42군의 강력한 반격을 받고 악전고투 끝에 27일 순천 일대로 철수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등중사는 소대원을 이끌고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11월 26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주 일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540 국)을 추서하고, 유해(44묘역-3판-1341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0-ㅊ-072)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