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조(李命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2611
  • 전몰일자 : 19501005

공훈사항

이명조 일병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 대명동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4월경에 입대 후 제8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의 부대 전입 당시, 제8사단은 1950년 4월까지 무장공비토벌작전을 진행하고 강릉에 주둔해 있었다.
이후 북한군은 1950년 6월경에 무장공비 60여 명을 침투시켜 국군의 반응을 살피는 동시에 전투 병력의 분산을 유도했지만 작전 개시 5일만인 1950년 6월 20일 대부분의 공비가 사살되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1950년 6월 25일 제8사단은 북한군에게 기습남침을 당했다. 당시 제8사단 정면으로는 북한군 제1경비여단 및 제5사단 제10연대가 진격하고 있었고 정동진 방면으로는 북한군 제945육전대와 제766부대가 침투하여, 제8사단에 대한 포위 및 제21연대의 증원 차단을 시도하였다. 국군은 1950년 8월 10일 북한군 제7사단이 기계 방면으로 이동했다는 제보에 격퇴를 위해 전투를 벌였다. 제8사단은 도평 337고지, 361고지에서 침입하는 적을 치열한 접전 끝에 저지하였고 수석봉에 진출하여 방어태세에 돌입하였다.
이후 제8사단은 의성지구전투에 참가하여 의성 북쪽 주저항선인 향로봉과 토곡동, 보현산 일대에서 야간전투와 백병전을 치루는 치열한 방어 전투로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결국 이 전투에 의해 북한군의 동부전선의 진출이 지연되어 북한군 제15사단을 청송으로 이동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보현산과 기계지역 정면에 새로운 주저항선을 형성하고 북한군을 11일간 지연시켰다.
전력을 보충한 제8사단은 1950년 9월 20일 국군 총반격 작전에 합류하여 적 1개 연대를 격파 후 계속해서 북진했다. 또한 포위된 북한군을 완전 섬멸하고자 시급히 병력을 이동시켜 일부 병력으로 전투를 펼친 결과 1950년 10월 3일 마침내 서울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50년 10월 5일 이 일병은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던 중 총탄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조 일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위패(22판-5면-1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ㄷ-09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