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조(李明祚)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339873
  • 전몰일자 : 19500630

공훈사항

이명조 상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힘겹게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제32연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제2사단은 11월 7일에 국본 일반명령 제103호에 의거 서울에서 재창설되었다. 이때 제17연대를 예속시키고, 이어 11월 11일과 13일에 신편된 제31연대와 제32연대를 예속시켰다. 사단은 재창설 직후 서울에서 포천-평강 지구로 이동하여 후방교란 활동을 하고 있던 북한군 패잔병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이 일대에서 북한군 패잔병들은 중공군 침공에 호응하여 유엔군의 병참선을 차단 및 보급품을 습격하는 등 후방교란활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 이에 북진하고 있던 국군과 유엔군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이명조 상병이 소속된 제32연대는 의정부 일대에 근거지를 설치하고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작전을 실시했다. 한편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해 총공격(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을 감행하여 통일을 달성하고자 했으나, 이때 대규모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하여 11월 초에 청천강을 잇는 선까지 철수했다.
이명조 상병이 소속된 중대는 11월 30일에 의정부 일대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대규모 북한군 패잔병을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격멸했다. 당시 북한군 패잔병들은 단순한 패잔병이 아니라 정규군과 다름없는 중대 규모 이상으로 조직화 된 부대였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전몰일자 1950-06-30은 아직 제32연대가 창설되지 않아 1950-11-30로 조정했음)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조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6판-1면-073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6-ㅍ-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