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재(李明宰)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701556
  • 전몰일자 : 19500829

공훈사항

이명재 일병은 경상북도 영천군 영천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으로 철수를 거듭하던 1950년 7월 중순, 경북 대구의 제25교육연대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재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7월 말, 제6사단은 문경-점촌-함창 축선에서 북한군 제1, 제13사단을 맞아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적의 공격 속도를 최대한 지연시키고 있었다. 그가 소속된 제19연대는 조령 일대에서 7월 31일까지 지연전을 실시했다. 이 시기에 제19연대는 상급부대 명에 의거 8월 1일 새벽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양곡동간 능선 일대를 점령했다. 즉 낙동강방어선을 점령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연대는 8월 6일에 적의 공격을 수차례 받고 격퇴했으나, 결국은 전투력의 열세로 진지에서 철수하여 선돌주막 남쪽의 236고지를 새로운 방어진지로 점령했다. 이곳에서도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철수하여 조동과 외곡동 일대를 점령했다.
제6사단은 8월 13일 군위-의흥을 거쳐서 매봉산과 산운동 일대로 철수하여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북한군 제1사단은 8월 15일부터 전차로 증강하여 방어 정면에서 맹렬한 공격을 계속했다. 이명재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8월 21일 야간에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백병전까지 실시하여 격퇴했다. 그리고 연대는 사단 예비로 전환한 후 8월 25일에 의흥 북쪽에서 공세행동으로 적 진지 측방으로 공격하여 수북동 북쪽의 237고지~287고지까지 진출했으나, 반면 북한군은 8월 27일에 조림산 북쪽의 고지를 무혈점령하고, 일부가 화산까지 침투함으로써 신녕을 위협했다.
이에 제6사단에서는 화산 및 조림산 탈환 작전을 수립했다. 이명재 일병이 소속된 제19연대는 8월 28일에 조림산 탈환을 위해 공격을 개시하였으나, 적의 저항으로 탈취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8월 29일까지 계속 공격하여 마침내 목표를 성공적으로 탈취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재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9판-5면-21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39-ㅊ-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