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재(李明宰)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243693
  • 전몰일자 : 19530417

공훈사항

이명재 이등중사는 1933년 8월 16일 경기도 김포군 양서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조국이 다시 처하자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1951년 1월 20일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유엔군이 37도선 일대에서 적과 대치하고 있었고, 사단은 영월 북서방에서 적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16일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과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평창군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4월 초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 상의 유리한 방어지역인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세를 개시했고, 연대는 공격을 전개하여 4월 하순 인제 서쪽의 관대리까지 진격했다. 이후 5월까지 연대는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월 하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고, 연대는 6월 초순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을 물리치고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연대는 8, 9월 동안 백석산 남쪽의 917고지와 883고지에서 적과 격전을 치르며 이 고지들을 확보했다. 연대는 9월 26일 백석산을 목표로 공격을 감행했으나, 북한군 제32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끝내 고지 탈취에 실패하고 28일 동 임무를 제8사단에 인계 후 양구 일대에서 부대정비를 했다.
연대는 11월 20일 다시 미 제10군단에 배속되어 백석산 북방의 1,090고지~931고지~암동~319고지를 있는 제8사단의 전선을 인수했다. 12월 25일 중공군은 연대가 점령하고 있던 1,090고지 전방의 전초진지(크리스마스고지)에 대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해 왔다 이때부터 연대는 이 고지에 대한 적의 3차례에 걸친 공격(제1차: 1951. 12. 25.~28. 제2차: 1952. 2. 11.~13. 제3차: 1952. 10. 6.~14.)을 막아내고 동 고지를 지켜냈다.
이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연대는 큰 전투가 없는 가운데 방어진지를 보강하면서 위력수색과 매복, 교란작전을 지속했다. 이 이등중사는 1953년 4월 17일 소대원을 이끌고 적진 교란작전을 수행하다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재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34744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54-ㅎ-05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