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재(李明宰)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0927

공훈사항

이명재 순경은 1929년 3월 22일 충남 서산군 부석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충남도경 당진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당진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당진경찰은 주요 시설 경비, 당진-화성, 당진-아산을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7월 4일 수원을 점령한 적은 전차를 앞세워 파죽지세로 경부가도를 남진했다. 충남경찰 비상경비사령관은 예하 경찰관서에 적의 오열과 지방공비를 색출하도록 특별 지시를 내렸다. 충남경찰은 군의 요청에 따라 경부선 주보급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7월 11일 제1대대(충남·서울경찰)를 청양, 제2대대(충남·경기경찰)를 홍산에 배치하여 청양-대천 선에서 군과 함께 북한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제1대대는 청양에 제1중대, 정산에 제2중대, 대천에 제3중대를 배치했으나 예산과 홍성에 적이 침입하여 홍성-대천 지역이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제1중대는 예산 방면에서 남진 중인 적 유격대를 급습하여 20명을 생포했고, 홍성군 산성면에서는 적과 교전하여 포로 50명, 사살 2명의 전과를 거두었다.
7월 12일 공주를 점령한 북한군 제4사단은 일부 병력을 강경·논산으로 우회시켜 대전 점령을 기도했다. 7월 15일 제1대대장은 제1중대 130명을 직접 지휘하여 대천 방향으로 진격하여 집결해 있는 수십 명의 북한군을 포위 급습하여 사살 3명, 포로 2명의 전과를 거두었으며, 이 전투에서 지방 공비 40명을 사살했다. 북한군이 계속해서 남진함에 따라 당진경찰은 부여-전주-남원-진주를 거쳐 8월 4일 함안에 도달하였으며,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기까지 낙동강 방어작전에 참여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유엔군의 반격작전이 개시되자 각 도(道) 경찰도 경찰서 수복에 나섰다. 당진경찰은 9월 17일 함안에서 출발하여 9월 27일 당진에 도달했다. 그 시기 당진에는 북으로 퇴각하지 않은 북한군이 많이 있어서 당진경찰과 북한군 간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 2명을 사살하고 계속해서 작전을 수행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재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5-ㅋ-068)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