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의(李命儀)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상사
  • 군번 : 1901916
  • 전몰일자 : 19501110

공훈사항

이명의 이등상사는 1928년 4월 28일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3월 15일 육군에 입대하여 국군을 건설한다는 자부심으로 훈련과 작전에 임했으며, 수도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이명의 이등상사가 소속된 연대는 의정부 지구 전투에 투입되었다. 1950년 6월 29일-7월 4일까지 한강 및 시흥지구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북한군 제7사단의 남하를 6일간 지연시켰다. 이후 미군이 방어하고 있던 금강선과 대평리 선이 위태롭고 또 청주 국사봉 방어선이 언제 돌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1950년 7월 17일 보은을 거쳐 20일 안동 부근으로 이동하였다.
이명의 이등상사와 연대병력은 낙동강 남쪽인 반변천 일대에 북한군과 교전하면서 1950년 8월 3일 길안과 청송으로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의성-영덕 간 50㎞에 달하는 공백이 발생하자, 국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이등상사는 16일 연대병력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기계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명의 이등상사와 장병들은 국군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을 거둠에 따라 반격으로 전환하였다. 그는 북한군 제12사단이 비학산 일대에서 공격해 오자, 9월 4일 안강을 포기하고 경주 북방에 있는 낙산(호명리)으로 철수해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9월 말 양양까지 진격하면서 38도선을 회복하였다. 이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그와 연대병력은 10월 10일 원산을 탈환한 후 함경북도 길주까지 진격하였다. 이후 11월에는 백암-청진 선으로 진출하여 두만강 진출을 목전에 두었다.
이명의 이등상사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오로지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명의 이등상사는 1950년 11월 10일 백암 부근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의 이등상사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2869 국)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4-ㅍ-00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