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육(이명육)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9000337
  • 전몰일자 : 19500903

공훈사항

이명육 하사는 출생에 대한 기록이 없다.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소백산맥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그는 나라와 자유를 지키고자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7월 중순경 육본직할 제1유격대대에 입대했다.
이 하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이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지연하고 있었고, 제1유격대대는 육본 예비로서 교육훈련 중이었다. 대대는 보현산 등지에서 북한군 산악 침투부대의 공격을 저지하다 8월 20일 대구에서 제7사단이 창설될 때 제3연대에 흡수되었다. 제7사단은 제3·5·8연대와 제5포병대대를 예하부대로 하여 창설되었다.
8월 하순 북한군 제15사단이 영천 북방의 고모산, 봉화봉, 수석봉 일대의 국군 제8사단 주저항선을 돌파하고 영천 북방의 기룡산 전방까지 진출함에 따라 사단의 상황이 급박하게 되었다.
이에 육군본부에서는 8월 27일 제5연대와 이 하사가 소속된 제3연대 제1대대를 제8사단에 배속했다. 대대는 제8사단 예하의 제16연대에 재배속되어 수석봉과 기룡산, 그리고 그 동쪽의 602고지 일대에서 북한군과 뺏고 뺏기는 혈전을 벌였다.
9월 2일 저녁 북한군의 공세(9월 공세)가 시작되었다. 북한군 제4공격집단은 주공인 제8사단에 전차 21대를 증강시켜 의흥~갑령~신녕~하양 축선에 투입하고, 조공인 제15사단에 전차 5대를 배속하여 죽장~영천 축선에서 공격을 가해 왔다. 대대는 기룡산 일대에 배치되었으나, 인접의 제8사단 제16연대 대대들이 적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철수함에 따라 대대는 적의 포위망에 갇히게 되었다.
대대 장병들은 육박전까지 치르면서 분전한 결과,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가까스로 포위망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이 하사는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분대원을 이끌고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9월 3일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육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3판-14면-868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7-ㄱ-02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