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원(李命源)

  • 군별 : 경찰
  • 계급 : 총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01117

공훈사항

이명원 순경은 1923년 9월 27일 경북 금릉군 조마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1946년 6월 2일 경찰에 입문했으며, 전몰 당시 경북도경 본부 소속으로 재직 중 덕유산에서 전사했다.
제주 4·3사건(1948년)과 이듬해 여·순 사건으로 인하여 안보적으로 매우 어수선한 상황에서 지방공비 세력이 증가하자 정부는 군·경 합동으로 대대적인 공비토벌작전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순경은 3단계(제1단계: 1949.10.30-11.30, 제2단계: 12.1-12.15, 제3단계: 1949.12.16-1950.2.28.) 토벌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북경찰은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보급로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0일 단양에서 남진한 북한군 제12사단은 죽령으로 진군했으며, 영월 방면에서 우회한 북한군 제8사단이 아군 정면을 공격함에 따라 피·아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3일간에 걸쳐 악전고투를 계속한 끝에 경북경찰은 진지를 포기하고 7월 12일 풍기에서 영주에 이르는 지연전을 펼치다가 다시 영주에서 후방으로 후퇴했다.
7월 20일 경북경찰은 제8사단의 일부 병력과 함께 예천으로 전진하여 적을 격퇴하고 예천을 탈환했다. 그러나 전 전선에 걸쳐 대규모의 병력과 화력을 앞세운 북한군의 남진에 따라 경북경찰은 8월 4일 대구까지 밀려나게 되었다.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9월 5일 부산으로 이동했으나 경북경찰은 끝까지 남아 대구를 사수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9월 16일부터 경북도경 본부 소속의 이 순경은 전쟁으로 인한 대구 관할지역에 대한 인원·시설의 피해 정도와 피난민 현황 파악, 오열 활동 분석을 하는 가운데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했다.
10월 중순경 미처 북으로 퇴각하지 못한 북한군 제2·제4사단의 패잔병과 지방공비 등 500명이 무주 덕유산을 근거지로 하여 치안교란과 약탈을 일삼고 있었다. 경북도경은 비상경비총사령부의 지시에 따라 11월 15일 잔적 소탕작전을 위해 경찰병력을 파견했다. 제202 전경대대로 편성된 이 순경은 11월 17일 덕유산에서 잔적을 소탕하던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원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ㄲ-02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