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원(李明遠)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909

공훈사항

이명원 순경은 1930년 1월 10일 경북 구미읍 지산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경북도경 구미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금릉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5일 오전 4시를 기해 북한군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을 개시하자 경찰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각 도(道) 경찰국이 즉각 전투태세로 전환하도록 지시하고, 군경 합동작전태세에 돌입했다.
구미경찰은 경북경찰의 일부로서 아군이 지연전을 전개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기까지 오열 색출, 정보수집, 주보급로 경비, 철도경비, 치안유지,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임무를 수행했다.
7월 10일 단양에서 남진한 북한군 제12사단은 죽령으로 진군했으며, 영월 방면에서 우회한 북한군 제8사단이 아군 정면을 공격함에 따라 피·아 간 공방전이 벌어졌다. 3일간에 걸쳐 악전고투를 계속한 끝에 경북경찰은 진지를 포기하고 7월 12일 풍기에서 구미에 이르는 지연전을 펼치다가 다시 구미에서 후방으로 후퇴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전선이 북상함에 따라 경찰관서 수복작전이 전개되었다. 구미경찰은 9월 23일 구미경찰서를 수복하고 치안유지, 주요 보급로 경비, 오열 색출, 철도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1월 23일 새벽에 북한군 제10사단 병력 중 1,000여 명이 안동군 길안면 묵계동을 공격했다. 제207부대 제2대대에 편성된 이 순경은 이날 적을 격퇴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되었다. 동 부대는 1월 23일부터 27일까지 작전을 수행하여 묵계를 탈환하고, 곧바로 적을 추격하여 500명을 격퇴했다. 이 전투에서 적 117명을 사살하고 소총 11정을 노획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 전투 후 이 순경은 구미로 복귀하여 치안유지, 주요 보급로 경비, 오열 색출, 철도경비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9월 9일 금릉군 대덕면 일대에서 수 명의 공비가 출현하여 양민을 학살하고 가축과 식량을 약탈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이 순경과 동료 경찰관들이 현장에 출동하자 곧바로 적과 교전이 벌어졌다. 이 순경은 적을 격퇴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원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6-ㄴ-035)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