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원(李明源)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68660
  • 전몰일자 : 19510607

공훈사항

이명원 상병은 충청남도 공주군 장기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10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수색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수색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고, 적 지휘소 및 보급소를 습격하여 적 후방을 교란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명원 상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월 중순, 제6사단은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그가 전입하기 전에 제6사단은 동두천 북방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얼마 후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실시했고, 제6사단은 중과부적으로 1951년 1월 1일 새벽에 철수하여 1월 6일에 장호원 부근의 적산리 일대로 이동했다.
제6사단은 2월 초에 중공군 공격에 대비하여 방어편성을 조정하면서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2월 12일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 시에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돌파구 확장을 방지하여 반격의 여건을 조성했다. 사단은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출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면서 큰 피해를 받고 철수하여 용문산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곳에서 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제6사단은 5월 20일부터 반격하여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5월 28일에 구만리발전소-병풍산을 잇는 선을 확보하고, 6월 5일부터는 철의 삼각지대를 포함하는 철원-김화를 확보하기 위해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했다. 이명원 상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6월 7일에 적진에서 정보수집 활동 중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나, 그곳을 이탈하는 데 성공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원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40판-6면-22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16-ㄴ-05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