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우(李明雨)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31515
  • 전몰일자 : 19520116

공훈사항

이명우 일병은 경상북도 청도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1년 1월 초순 육군에 입대하여 간단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1사단 제11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명우 일병은 서울 철수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1951년 1월 4일 서울에서 37도선 평택까지 철수하였고 이어 1월 말 반격작전으로 전환하여 수원, 의왕 거쳐 한강 서울 재탈환하였다. 이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1월 31일부터 미 전차의 지원하에 2개 대대 병진대형으로 안양 남쪽의 수리산-모락산을 공격하여 개시 5일 만에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끝에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서울 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이 일병과 연대병력은 3월 15일 제6중대의 도하를 시작으로 각 대대의 일부 병력만 도하시켜 적정을 탐지하도록 한 다음, 16일 한강을 도하하여 시내로 진출함으로써 서울 전역을 장악하였다. 그 후 서울에서 북상하여 진격하였고 고양 임진강 전투에서 북한군과 조우하여 치열한 전투를 수행하였다.
5월 20일 문산-포천을 연하는 토페카선을 점령한 후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으로, 임진강과 화천저수지를 끼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선이다)상의 영평을 확보할 목적으로 사단을 문산 축선에 투입하였다. 이명우 일병과 연대 장병들은 고봉산 부근에서 경미하게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퇴하고 일산을 경유 금촌으로 진출하였다. 7월 10일부터 시작된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진행 중이었으나 전투도 계속되고 있었다.
1951년 12월 28일-1952년 1월 8일간에 문산 정면의 임진강 북쪽 두매리 부근에서 사단과 중공군 간에 전초진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명우 일병이 소속된 연대는 주저항선을 임진강 북안의 사천-백학산-사미천을 연하는 선으로 추진하여 북한군과 대치하였고, 달려드는 북한군을 상대로 수류탄과 백병전으로 혼신의 혈전을 벌인 끝에 이를 격퇴하였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언제나 앞장서서 북한군을 물리치는 용맹을 발휘하였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던 이명우 일병은 1952년 1월 16일 백학산 부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우 일병의 혁혁한 전공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43110 육)을 추서하고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14-ㅈ-03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