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우(李明佑)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705988
  • 전몰일자 : 19501011

공훈사항

이명우 이등중사(군번으로 볼 때 이등중사)는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2월 중순, 강원도 춘천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당시 연대는 춘천에 연대본부를 두고 화천-춘천 축선을 담당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 전선에서 기습적인 침략을 감행했다, 제7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2사단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고 곧바로 전방방어지역에 투입되어 적의 공격을 저지하고자 했다. 연대는 소양강이라는 지형의 이점을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가함으로써 27일까지 적 부대의 춘천 점령을 저지했다. 그러나 제7연대는 6월 27일에 춘천에서 철수하여 이후 7월 한 달 동안 원주-충주-문경-점촌 –함창 일대로 물러서며 지연전을 수행했다.
이명우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8월 3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의 낙동강 선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이후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격퇴했다. 결국 북한군들은 공격기세가 점점 약화되었고, 9월 12일부터는 공세를 취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일제히 반격작전을 개시했다.
제6사단은 조림산 일대의 북한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으나 북한군도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완강히 저항하여 9월 20일까지 북한군의 방어진지를 돌파하지 못했다. 북한군은 아군의 강력한 공격에 9월 21일부터 퇴각하기 시작했다. 사단 장병들은 9월 22일부터 함창을 거쳐 9월 29일에는 충주, 10월 1일에는 원주를 확보했다.
이명우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6사단은 10월 4일에 춘천에 도착하여 춘천 시내를 감제할 수 있는 춘천 남쪽의 수리봉과 652고지를 점령했다. 이명우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7연대는 10월 5일에 차량편으로 춘천을 출발하여 38도선을 돌파했다. 북한군은 38도선 일대부터는 강력하게 저항했다. 연대 장병들은 북한군 제9사단 예하 2개 대대 규모를 격파하고 10월 9일 오후 늦게 화천을 점령했고, 10월 11일에 김화와 금성을 점령했다. 이날 금성을 점령하는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우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4면-19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ㅊ-023)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