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우(李明宇)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0626260
  • 전몰일자 : 19530601

공훈사항

이명우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익산군(現 익산시) 성당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공세로 38도선 일대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1951년 7월 5일 입대하여, 제주도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5사단 제35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우 이등중사가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국군과 유엔군이 캔자스(Kansas)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과 그 북방에서 중공군 및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었다. 美 제10군단에 배속된 제5사단은 1951년 9월 4일부터 10월 14일까지 40여 일간 강원도 양구 일대 가칠봉 전투에서 그 북쪽에 위치한 1,211고지를 3번이나 점령했다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 끝에, 가칠봉과 서희령을 굳건하게 지켜내며 전선을 확보하여 해안분지(펀치볼)확보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사단은 이 전선을 10월 20일 국군 제3사단에 인계하고 육본직할로 전환되어 동해안 양양으로 이동하여 부대정비와 인근 지역에 대한 수색정찰과 매복작전을 병행했다.
1952년에 접어들면서 사단은 1월 13일에 국군 제1군단 배속으로 동해안 거진으로 이동하여 제11사단의 전선을 인수하면서, 군단 우측의 554고지-351고지-감호 일대를 잇는 방어선에 투입되었다. 적이 7월 10일 야간 10시에 대규모 공격준비사격을 개시한 후 대거 침공을 개시하여 진지의 일부가 돌파되고 말았다. 사단은 피탈된 351고지에 역습을 전개하여 7월 13일 고지를 탈환한 후 몇 차례의 소규모 침공을 격퇴했다. 이어서 사단은 11월 9일 적 대대 규모의 공격을 받았으나 역습으로 고지를 확보했다.
1953년 4월 중순까지 사단은 육본 직할로 강원도 고성군 간성에서 부대정비 및 교육훈련에 임하고 있다가 제2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사단은 4월 15일 백암산 동북방 제3사단 전선을 인수하여, 949고지-973고지-883고지를 잇는 전선을 방어하면서 주진지와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이명우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35연대는 사단예비로 낡은터와 황병동에 집결하여 주진지 및 전초진지 보강을 실시했다.
중공군 제60군 제180사단이 5월 12일에 사단의 전초기지인 689고지(텍사스고지) 및 오봉능선과 삼각봉을 공격해 왔으나 사단은 5월 17일까지 4차례의 역습을 실시하며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했다. 사단은 중공군의 6월 10일 하계공세가 시작되기 전까지 전초진지와 주진지 보강을 계속 실시했다. 이명우 이등중사사는 복무기간 중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소대원을 통제하며 전초진지인 텍사스고지를 보강 중 6월 1일 적 포격에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우 이등중사의 혁혁한 전공을 표창하여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28841 육)을 추서하고,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35-ㅅ-052)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