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용(李明用)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1207143
  • 전몰일자 : 19501009

공훈사항

이명용 이병은 1924년 4월 30일에 전라남도 무안군 안좌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던 1950년 8월 중순,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2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용 이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9월 9일, 제6사단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다. 사단 장병들은 북한군의 공격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고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사단 장병들은 반격 첫날 공격에서 치열한 교전 끝에 신녕 정면의 349고지와 332고지를 탈환했고, 북한군은 조림산 방면으로 후퇴했다. 북한군들은 인천상륙작전으로 그들의 후방이 차단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조림산 정상을 거점으로 방어진지를 강화하고서 9월 22일까지 국군의 공격에 완강히 저항했다. 그리고 이날 야간에 조림산을 포기하고 북쪽으로 소리 없이 퇴각했다.
이에 제6사단 장병들은 9월 23일부터 조림산에서부터 도망가는 북한군을 소탕하며 추격여 의흥-함창-보은, 괴산을 거쳐 9월 29일에 충주에 집결했다. 이날 충주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대대 규모의 북한군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기세가 오른 연대 장병들은 신속히 제압했다.
이명용 이병이 소속된 제2연대는 선두에서 9월 30일에 북한군의 경미한 저항을 제거하며 원주에 진입했고, 계속 횡성-홍천 방향으로 북한군을 추격하여 10월 4일에 춘천을 탈환했다. 여기서부터 북한군은 강력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연대 장병들은 10월 5일에 모진교에서 강력히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멸하고 38도선을 돌파했고,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하고, 10월 9일에 김화까지 진격했다. 북한군의 저항 강도는 북으로 올라갈수록 커졌다. 이날 김화를 공격하는데, 중대 규모의 북한군 패잔병들이 기습적으로 반격하여 아군에 피해를 줬으나, 즉각적인 반격으로 저항하는 북한군을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용 이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8107국)을 추서하고, 그의 유해(장병7묘역-708판-69158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1-ㅈ-01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