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언(李明彦)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2201852
  • 전몰일자 : 19500710

공훈사항

이명언 하사는 강원도 울진군 근남면에서 1924년 2월 27일에 출생하였다. 이 하사는 1949년 2월 27일에 입대한 후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당시 제8사단은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방어를 담당하던 부대였으며 강원도 인제군으로부터 양양군 일대에 이르는 지역에서 38도선의 경계를 담당하였다.
제8사단은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한군 유격대가 1950년 3월 24일 38도선 지구인 서림, 장리 일대에 침공하는 사건이 있었고, 제8사단은 기습한 북한군을 저지해야만 했다. 적의 맹렬한 포탄에 전세가 불리하여 후퇴 후 주문진에 위치하고 있던 제6중대와 제8중대와 함께 반격을 가했다.
또한 명지리전투 다음 날인 1950년 3월 25일에는 정족산 전투에서 고지로 급진적으로 침입하는 북한군을 전투 끝에 격파하였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대대적인 남침을 개시하였다. 당시 제8사단은 전방에 배치된 제10연대로 하여금 지연전을 실시하는 한편 삼척군에 주둔하고 있던 제21연대를 강릉군 방면으로 이동시켰다. 국군은 방어와 함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역습을 시도해 적에게 피해를 줬으나 적의 병력과 화력이 우세해 강릉을 상실하고 지연전을 펼쳤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2일 극비리에 과남을 출발하여 양양에 집결하고 제38경비단 제1여단 3개 대대와 더불어 수륙 양면으로 남침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이후 강릉을 시작으로 서림 광원리 지구로 남진시키며, 제766부대로 하여금 강릉 삼보, 임원동 지구에 상륙시켜 국군을 위협하고 있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 국군의 감시망을 통과하여 동해 강릉 방면에 상륙 준비를 완료하고 아군 정면 38도선 일대에 일제히 침공하였다. 북한군의 병력과 화력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v보트 4쌍, 경비선 1쌍, 발동선 20척, 범선 40척 등으로 매우 우세한 상황이었고 국군의 군사력에 비해 매우 위협적인 수준이었다.
제8사단은 북한군의 양면 기습으로 정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불리한 전투를 개시했으나 왕성한 사기로서 압도적인 공격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이 하사는 안타깝게도 6·25전쟁 개전 초기의 중과부적 상황에서, 분전 끝에 제8사단 장병들과 함께 진지를 사수하다 1950년 7월 10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언 하사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38묘역-4면-1865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6-ㅅ-057)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