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암(이명암)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8830692
  • 전몰일자 : 19521029

공훈사항

이명암 일병은 1926년 8월 1일에 경상북도 선산군 선산면 이문리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지루한 휴전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카투사(KATUSA)로 차출되어 미 제7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명암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6월 중순, 미 제7사단은 3월 중순부터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중서부전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당시 중동부전선에는 국군 제2군단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1952년 7월부터 12월까지 중공군 4개 군단(제38·제15·제12·제68군단)과 전초진지 및 방어지역의 주요 고지를 서로 점령하기 위해 고지쟁탈전을 수행했다. 또한 기간 중 군단 좌측의 국군 제9사단이 10월 6일부터 백마고지에서 혈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1952년 여름부터 공격작전을 시도하여 수차례에 걸쳐 공격했으며, 가을로 접어들면서 전 전선에서 작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아군 진지에 대해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첫 번째로 미 제9군단의 서측방에 위치한 백마고지에 대해 공격했다.
한편 미 제9군단은 전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더 강력한 공격하기로 하고, 10월 14일 새벽 5시에 저격능선과 삼각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쇼다운작전’을 개시했다. 군단 예하 16개 포병 280문의 야포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으며, 유엔 전폭기의 항공지원이 개시되었다. 이후 미 제7사단에서 1개 연대가 삼각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미 제32연대가 먼저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이명암 일병이 소속된 제17연대가 10월 16일에 재차 공격하여 정상인 598고지 일대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적들의 필사적인 역습으로 10월 19일 상실했다. 연대는 10월 22일에 삼각고지를 재탈환하기 위해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이 지역을 10월 25일부로 국군 제2사단에 인계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미군 장병들과 함께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0월 29일에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암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3판-40면-21836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8-ㅎ-03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