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실(李明實)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619652
  • 전몰일자 : 19510427

공훈사항

이명실 상병은 1929년 10월 12일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에서 출생하였다. 이 상병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상병은 1950년 7월경 입대 후 부산에 있는 제2훈련소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 제9사단이 창설됨에 따라 연대의 제2대대는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상병은 제9사단 직할부대에 배치되었다.
아군이 북으로 진격함에 따라 퇴로를 차단당한 적의 잔류 병력은 아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동시에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방지역작전을 하던 미 제9군단과 예하 미 제2·제25사단이 청천강 선으로 투입됨에 따라, 10월 15일 창설된 국군 제3군단이 후방지역작전을 담당하게 되었다.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어 1950년 11월 23일부터 12월 17일까지 전북 대둔산 및 충남지구와 경북 서부지역 공비소탕 작전을 실시했다. 12월 19일부로 제9사단은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었다. 그 후 38도선 상의 강원 인제군 원대리-현리-서림을 잇는 선을 방어했다. 연대는 현리-서림을 잇는 방어선에서 12월 말까지 북한군 제2군단 소속의 유격부대와 격전을 벌였다. 이어서 12월 31일에 시작된 중공군 제3차 공세 당시 제9사단은 제3군단에 배속되었다.
사단은 원대리-서림을 잇는 방어진지에서 북한군 제10사단과 격전을 벌였다. 그 후 상급 부대명에 의거하여 영월-삼척 선으로 철수한 뒤 정선군 창리 일대에 배치되었다. 이후 연대는 창리 일대에서 중공군 2월 공세를 맞아 대략 1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격퇴했다.
제9사단은 1951년 3월 5일에 제1군단으로 배속 전환되어 안동 일대까지 침투했다가 북상하는 북한군 제10사단을 강원 정선군 송계리 일대에서 포위 격멸했다. 이후 유엔군은 4월에 접어들어 캔자스선(임진강~연천~화천저수지~양양을 잇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이때 제9사단은 4월 25일 제3군단에 배속되어 강원 인제 동남방의 한석산, 가리봉 일대까지 진격했다. 이 상병은 이 공격전에서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 적탄에 맞아 1951년 4월 27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실 상병의 혁혁한 전공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8-ㄴ-01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