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식(李明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25126
  • 전몰일자 : 19501210

공훈사항

이명식 일병은 1924년 1월 1일 경상북도 상주면 낙동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하고 반격작전을 실시하던 1950년 10월 11일에 대구에 위치한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단기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 제7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명식 일병이 부대로 전입갔을 때에 국군과 유엔군은 평양을 점령하고, 제6사단 선두부대는 10월 26일에 압록강변의 초산을 점령한 후 국경선 경비임무에 돌입했다. 중공군은 10월 중순에 은밀히 압록강을 건너 적유령 산맥 일대에 은거해 대기하다가 국군과 유엔군이 총공격하는 것을 확인하고, 10월 26일에 아군의 후방을 차단하면서 대대적인 공격을 실시했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당황하여 일단 청천강선으로 철수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는 장병들과 함께 초산에서 험준한 산로를 따라 130km의 원거리를 남하하여 개천에 도착하였고, 이곳에서 사단은 군단의 예비가 되어 재편성을 실시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이 조직적인 공격을 실시하기 이전에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11월 24일을 기해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단행했다. 그러나 25일 중공군의 대반격으로 후방이 차단당하자 다시 후퇴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이명식 일병은 12월 초에 장병들과 함께 북창을 거쳐 시변리-고랑포 지역으로 철수했다. 그는 철수하는 도중에 적으로부터 기습사격을 받아 전투 중 적의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대구에 위치한 제1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후 회복되어 육군 제1훈련소 조교요원으로 전속되었다.
당시 육군 제1훈련소는 신병양성에 주력하면서도 인근에 출몰한 적들의 유격활동에 대응해야 했다. 훈련소는 조교를 포함한 기간요원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이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해왔다. 1950년 12월 10일에 대구 외곽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명식 일병이 소속된 기동타격대는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 투입되어 격멸했으나, 그는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다 적의 기습사격에 맞아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명비(084-ㄷ-04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