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식(李明植)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7798
  • 전몰일자 : 19510309

공훈사항

이명식 일병은 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11월 중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8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전황은 압록강까지 진출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중공군의 참전으로 38도선 일대로 철수하고 있었고, 영변까지 진출했던 제7사단도 후방으로 철수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연대는 12월 3일 승호리 일대로, 6일 신계를 거쳐 시변리로 철수했고, 계속해서 연천을 거쳐 12월 15일 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12월 31일 중공군 제3차 공세를 시작했고, 연대는 북한군 제10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연대는 38도선 상에서 물러나 자은리를 거쳐 1951년 1월 8일 영월 동북방에 배치되었다. 이무렵 북한군 제2군단이 영월로 진출함에 따라 제3군단은 제7사단으로 하여금 영월을 탈환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연대는 1월 19일 공격을 개시하여 만경대산, 785고지, 583고지, 계족산을 차례로 점령하고,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24일 연대는 총공격을 개시하여 영월을 탈환하고 퇴각하는 적을 섬멸했다.
적이 물러남에 따라 1월 25일 사단은 공세로 전환하여 평창 북방으로 진출했고, 2월 초순까지 횡성 동북방의 창동리 일대까지 진격했다. 2월 11일 개시된 중공군 제4차 공세(2월 공세) 때, 연대는 북한군 제2군단의 집중 공격을 받고 평창 일대를 내주고 후방으로 후퇴했다. 적은 계속해서 영월을 점령하려고 기도했으나, 연대는 17~18일 양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의 공격을 저지했다.
유엔군의 킬러작전(2. 21.~3. 6.) 때, 연대는 평창-창동리 도로를 따라 공격하여 강원 평창군 백석산 일대까지 진출했다. 연이은 유엔군의 리퍼작전(3. 7.~3. 31.) 때 연대는 백석산과 백적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27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3월 12일 평창군 진부면 하진부리를 점령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서서 진격하다 적탄에 맞아 3월 9일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식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20판-3면-1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2-ㅈ-01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