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술(이명술)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1124193
  • 전몰일자 : 19510112

공훈사항

이명술 일병은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발발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선까지 후퇴하는 위급한 상황에서 1950년 8월 초순 제1연대에 입대 후 소총병으로 배치되었다.
이명술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수도사단 예속으로 8월 초순부터 낙동강방어선의 안강지역 전투에 투입되었다. 이 일병과 장병들은 9월 14일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적을 물리침으로써 낙동강방어선에서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힘입어 국군은 9월 16일 반격작전으로, 9월 22일 추격작전으로 전환했다.
제1연대는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부터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해 10월 1일 하조대 부근에서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이후 사단은 10월 10일 원산을 점령한 후 동해안을 따라 계속 진격했다.
11월 5일 길주 동남쪽에 있는 552고지에 있던 적이 맹렬한 사격을 가해와 이명술 일병이 소속된 제1연대는 즉각 공군 및 포병의 긴급지원을 요청하여 지원을 받아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힘겹게 전진해 나갔다. 이어 봉강을 공격했으나 전차로 증강된 대대규모의 대병력이 역습을 가해 옴에 따라 장병들은 어랑천 남안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11월 19일 봉강 남쪽에서 어랑천을 도하하여 봉강 좌우측 어랑천 일대의 적을 격파하고 적의 진지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10여일 간에 걸쳐 일진일퇴의 치열한 공방전이 수도사단의 승리로 끝이 났다.
어랑천 전투에서 참패한 북한군은 회문을 경유 주을, 청진 방면으로 철수하면서 축차적으로 지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여 사단의 진격을 저지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동해안 도로를 따라 북으로 공격하여 11월 21일에 주을을 점령하고, 11월 23일에는 경성을, 이어서 11월 24일 아침에 나남에 접적 없이 진입하여 청진을 점령했다.
그 후 국군과 유엔군의 주력은 불법 개입한 중공군의 강력한 공세에 밀려 38도선으로 철수하게 되었다. 이에 수도사단은 38도선으로 철수 후 인제군 도채동-동해안 양양 지역 방어를 담당했다. 이명술 일병은 방어진지를 사수하다가 1951년 1월 12일에 중공군의 총탄에 맞아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125-ㅇ-007)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