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순(李明順)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0327100
  • 전몰일자 : 19510628

공훈사항

이명순 하사는 서울시 영등포고 상도동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국군이 북한군의 남진에 밀려 낙동강 선으로 후퇴하자,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분연히 일어섰다. 이 하사는 1950년 9월 초순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수색중대에 배치되었다.
사단은 북한군 9월 공세 때 영천 전투에서 북한군 제15사단의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내고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기여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함에 따라 사단은 추격작전으로 전환했고, 10월 8일 38도선을 돌파한 후,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으로 진격했다. 사단은 11월 초순 평안남도 개천 동북방의 비호산전투에서 중공군을 물리쳤으나, 묘향산 남방에서 중공군의 2차 공세에 부딪혀 순천-승호리-신계-시변리-연천-춘천으로 단계적으로 철수하여 12월 15일 춘천 동북방의 38도선 일대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이후 사단은 영월-평창-하진부리-인제 축선에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며 중공군의 제3~제4차 공세를 막아냈다. 1951년 5월 16일 중공군 5월 공세가 시작되었고, 정자리 일대에 배치된 사단은 중공군 제79·81사단의 집중공격을 받았다. 사단 장병들은 백병전을 펼치며 결사적으로 적을 저지하려 했으나, 압도적인 적의 공격에 밀려 5월 18일에는 풍암리까지 후퇴했다.
북한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한 유엔군은 공세로 전환했다. 이때 사단은 양구 방향으로 진격했고, 6월 7일부터 12일까지 양구 서북방의 군량현 일대에서 적과 치열한 교전 끝에 ‘신 캔자스선’ 상의 마석봉-504고지-757고지를 잇는 선을 확보했다. 사단은 6월 12일 공격을 재개하여 적의 저항을 물리치고 양구 서북방의 백석산(1,142고지)으로 연결되는 능선의 발판인 917고지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사단은 757고지, 917고지 일대에서 적과 고지를 뺏고 뺏기는 공방전을 계속했다. 일련의 전투에서 이 하사는 분대원을 이끌고 적진에 투입되어 적정을 살피다가 6월 28일 적의 습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순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06판-6면-269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3-ㅌ-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