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순(李明淳)

  • 군별 : 육군
  • 계급 : 상병
  • 군번 : 0185305
  • 전몰일자 : 19511122

공훈사항

이명순 상병은 1925년 3월 13일에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고 북진작전을 한창 실시하고 있었던 1950년 10월 중순,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2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배치되었다.
제2사단은 11월 7일부로 서울에서 재창설되었으며, 이후 12월 중순에 포천 북방의 양문리-탑두울을 잇는 선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 공격에 대비했다. 중공군은 12월 31일 야간에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서울을 압박했다. 사단은 다음날 새벽에 장병들과 함께 진지에서 이탈하여 1951년 1월 7일에 충주에 집결했다. 이후 2월 13일에는 안동으로 이동하여 후방지역 공비소탕작전을 실시했다.
제2사단은 안동 일대에서 공비소탕작전을 완료하고, 4월 28일에 다시 미 제9군단으로 배속되어 청평지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저지하고, 재반격작전에 참가하여 육단리-적근산을 연하는 선까지 진출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은 전선의 소강상태가 계속되자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킴과 동시에 휴전협상을 촉진하기 위해 방어진지 전방에 대한 공세적인 전투를 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제2사단은 진지 전방의 감제고지인 745고지를 탈취하기 위해 8월 2일 공격을 목표를 탈취했다. 중공군은 이날 야간에 반격을 감행하여 다시 빼앗겼다. 이러한 피아간의 공방전은 8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745고지에 대해 9월 1일부터 3일까지 다시 공격하여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사단은 10월 13일에 김화-금성진격작전을 개시하여 10월 18일까지 연대별로 부대를 교대하면서 공격하여 김화 북쪽 14km에 있는 금성까지 진출하여 금성천 분지를 확보했다. 이명순 상병이 소속된 공병중대는 전방 연대에 대하여 공격시에는 장애물 개척, 방어시에는 장애물 설치를 지원함으로써 작전에 기여했다.
이후 사단 장병들은 방어진지 보강과 수색작전에 집중했다. 이명순 상병 소속된 공병중대는 방어진지 보강의 일환으로서 진지 전방에 대전차장애물 설치공사를 실시했는데, 11월 22일에 공사 중 적 침투부대의 습격을 받았으나 반격으로 격퇴했다. 이날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순 상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화랑무공훈장(훈기번호 117793 육)을 추서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19-ㄹ-099)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