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숙(이명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36723
  • 전몰일자 : 19510504

공훈사항

이명숙 일병은 경상북도 선산군 선사면 습예리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38도선을 돌파하여 압록강을 향해 진격하다가 중공군의 기습공격으로 청천강 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1월 15일, 제주도 모슬포의 육군 제5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제6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명숙 일병이 전입했던 12월 중순, 제6사단은 연천-의정부 축선을 방어하기 위해 38도선 상의 전곡-백의리를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서울을 향해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를 개시했다. 사단은 방어진지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처음에는 격퇴했으나, 적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했다. 사단 장병들은 전투력이 열세하고, 설상가상으로 측후방이 적에게 차단당하여 더는 방어진지에서 싸울 수 없어 1951년 1월 1일 오후 8시에 철수하여 덕정리로 이동했다. 그곳도 이미 적이 점령하고 있어 의정부를 거쳐 서울 창동으로 이동했다. 이후 경기도 광주로 이동하여 한강 남안 일대를 점령하고, 1월 7일에 평택-안성-장호원을 연하는 방어선으로 이동하여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제6사단은 문막 북방의 판대로 일대로 이동하여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단은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2월 21일부터 실시된 유엔군의 반격작전(일명 킬러작전)에 참가하여 횡성 일대를 점령했다. 이날 이명숙 일병이 소속된 대대는 횡성을 공격하던 중 적의 기습적인 공격으로 큰 피해를 받았고, 그는 중상을 입고 부산의 제5육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얼마 후 완쾌되어 복귀할 때인 4월 중순에 부산의 육군 제2훈련소로 전속되어 조교 임무를 수행했다.
이명숙 일병이 소속된 육군 제2훈련소는 신병훈련에 집중하면서 주변 지역에 나타난 적 게릴라 소탕작전에도 수시로 참가하였다. 이에 훈련소는 조교들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대비했다. 당시 부산지역에는 정부 주요기관과 군 시설이 많아 적 게릴라들의 표적이 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5월 4일에 부산 인근의 삼랑진 일대에 적 게릴라(북한군 패잔병)들이 나타났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그가 소속된 기동타격대는 즉각 출동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들의 기습사격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숙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4판-6면-020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126-ㅋ-015)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