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이명수)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9301972
  • 전몰일자 : 19500827

공훈사항

이명수 일병은 6·25전쟁 발발 이후 북한군이 낙동강 선까지 남진하면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1950년 7월 13일에 대구에 설치된 경북편성관구사령부에 입대하여 제3교육대에 배치되었다(출생 일자 및 출생지 미상).
한편, 개전 이래 수많은 전사자가 발생함에 따라 병력 보충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병력 확보와 각 지역 방위 임무를 동시에 해결할 목적으로 7월 초순 각 도별로 편성관구사령부를 설치하고 신병 확보와 더불어 후방지역작전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가 대구에서 창설되었다. 그리고 신병교육을 위해 7월 11일 제25교육연대가 창설되었으나, 7월 17일 경북편성관구사령부 제7교육대로 개칭되었다. 이후 제7교육대는 8월 1일부로 육군중앙훈련소로 개칭되었고, 8월 14일 국본 일반명령 제46호로 대구에 육군본부 직할로서 육군 제1훈련소로 재창설되었다. 이들 신병훈련소가 창설되기 전에는 각 도의 편성관구사령부가 임시로 신병 모집과 교육을 했다.
이명수 일병이 전선에 배치될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소백산맥 선에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자 낙동강 선에서 최후방어전을 펼치고자 했다. 유엔군은 8월 1일부로 낙동강 선으로 철수하여 방어에 임했다. 8월 초순 낙동강선으로 전선이 남하함에 따라 대구 지역에 대한 북한군 정찰대와 좌익 빨치산 세력들의 습격, 파괴활동이 더욱 극심해졌다. 당시 대구에는 육군본부와 미 제8군사령부, 각종 지원부대, 정부기관 등이 밀집되어 있어 정찰대들의 공격 목표가 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이 워낙 긴급했고 병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경북편성관구사령부는 교육 중인 신병으로 기동타격대를 편성하여 북한군 정찰대에 대응해 왔다. 8월 27일 대구 시내에 적이 출몰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 일병이 소속된 기동타격대원들은 이들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다. 이명수 일병은 소탕 작전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3판-40면-21830호)를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123-ㄲ-024)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