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李明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45509
  • 전몰일자 : 19501230(1952-12-30으로 조정)

공훈사항

이명수 일병은 강원도 원성군 판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어섰다. 이 일병은 1950년 10월경 제주도 모슬포에 있는 제5훈련소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제7사단 제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일병이 부대에 배치될 무렵 유엔군이 북진작전 중이었고, 제7사단도 북진 중이었다. 사단은 10월 8일 양문리에서 38도선을 돌파했고, 김화-평강-곡산-평양 북방-개천을 거쳐 11월 1일 군우리까지 진출했다. 연대는 3일 군우리 북방의 비호산에서 중공군 제112사단의 공격을 받았고, 연대 장병들은 7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적을 격퇴하고 비호산을 지켜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부상을 입고 후송되었다.
이 일병은 1951년 7월경 부상에서 회복되어 제101근무사단에 배치되었다. 한편, 육군본부는 1951년 7월 15일 제101, 제103, 제105근무사단(KSC)을 창설했다. 이 사단들은 미 제8군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되었는데, 그 임무는 노무자를 지휘하여 미 제8군의 전투부대 및 전투요원에 대한 제반 작업과 노무 일체를 직접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일병은 근무사단 본부에서 근무하다 1952년 3월 중순경 미 제7사단을 근무지원하는 연대로 전속되었다. 이때 미 제7사단은 미 제9군단에 배속되어 중서부전선에서 방어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미 제9군단은 10월 14일 새벽 5시에 저격능선과 삼각고지를 탈취하기 위한 ‘쇼다운작전’을 개시했다. 군단 예하 16개 포병 280문의 야포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으며, 유엔 전폭기의 항공지원이 개시되었다. 이후 미 제7사단이 삼각고지를 목표로 공격을 개시했다. 사단은 16일 고지 정상인 598고지 일대를 점령하였으나, 필사적인 적의 역습으로 19일 이를 상실했다. 이후 목표는 탈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국군 제2사단에 작전지역을 인계했다. 이 전투에서 이 일병은 포탄이 작렬하는 가운데서도 노무자들을 인솔하여 탄약과 급식 보급에 앞장서다 적탄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나, 12월 30일 끝내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9판-1면-1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4-ㄱ-08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 전사자 명부에는 제101연대 소속으로 1950-12-30에 전사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동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대이므로 오기로 추정하고 소속을 제101근무사단으로 조정하고, 전몰일자도 1952-12-30으로 조정하여 작성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