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李明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9512
  • 전몰일자 : 19500806

공훈사항

이명수 일병은 강원도 원성군 판부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을 지키고 조국을 위해 헌신하고자 1948년경 육군에 입대하여, 동년 6월 7일 창설된 제1공병대대에 배치되었다. 동년 8월 19일 경기도 부평에 제1공병단이 창설되자 대대는 동 단에 편입되었다. 이 일병은 교육훈련에 전념함으로써 공병부대의 확장과 능력 향상에 기여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제1공병단은 제1건설공병대대, 제9야전공병대대, 창고중대, 제1정비중대로 편성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이 일병이 소속된 제1공병단은 경인선 철교(상·하행선) 폭파 임무를 부여받았다. 28일 01시 45분경 북한군 전차가 돈암동에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은 육군 총참모장은 지체 없이 한강교와 경인선 철교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02시 30분 한강교는 폭파되었다. 하지만 경인선 철교는 원인 불명으로 불발되고 말았다.
6월 29일부터 시작된 한강방어선전투 때 제1공병단은 공병학교 장병들과 함께 혼성 대대로 편성되어 노량진의 사육신 묘소가 있는 39고지와 월파정을 포함하여 한강 인도교와 대방동 삼거리에 이르는 강변에 배치되었다. 장병들은 반파 상태에 있는 경부선 철교에 폭약을 장전하고 폭발시켰으나, 복선의 남단에 있는 교대와의 연결부분이 약간 이탈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공병단은 노량진-수원-평택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7월 5일 오산 북쪽의 일부 교량을 폭파했고, 이후 금강 방어선-소백산맥 방어선으로 지연전을 펼치면서 교량폭파와 장애물 설치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이 아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계속 남하함에 따라 유엔군은 8월 1일부터 낙동강방어선으로 철수하여 최후의 결전을 시도했다.
한편, 육군본부는 1950년 8월에 제1공병단을 제1201건설공병단으로 개칭하는 한편, 제1101야전공병단과 제1102야전공병단을 창설하여 제1·2군단을 각각 지원하게 했다. 이때 이 일병은 제1101야전공병단에 편성되었다. 제1군단은 1950년 7월 5일 경기도 평택에서 창설되었고, 낙동강방어선 전투에서는 중동부전선에서 북한군과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했다. 이때 제1101야전공병단은 전방 사단을 지원하면서 도로 및 교량 보수 임무를 수행했다. 낙동강방어선에서 이 일병은 장애물 설치와 도로 보수에 앞장서다 8월 6일 적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11판-4면-155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80-ㅋ-09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