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李明秀)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63766
  • 전몰일자 : 19500901

공훈사항

이명수 일병은 경상남도 창원군 동웅면에서 출생했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음에도 정치·사회적으로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12월 초순, 경기도 수색의 제1사단에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13연대에 배치되었다.
이명수 일병이 부대로 전입했던 때, 제13연대는 개성 우측지역의 38도선 경비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전쟁 발발 시에 문산-봉일천 축선에서 6월 28일까지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고, 7월 한 달 동안은 진천-청주-상주 축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시켰다. 그리고 8월 한 달 동안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총공세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8월, 9월 공세를 저지할 때, 이명수 일병은 제11사단 창설 요원으로 사단 본부로 전속되었다. 당시 제11사단은 낙동강방어선 전투가 한창이던 8월 27일에 부대를 창설하고 예하 부대로 제9, 제13, 제20연대를 편성하기로 하고 창설 준비를 했다. 이는 차후 반격작전 시에 후방지역작전을 위해서였다. 사단 사령부와 직할부대부터 먼저 창설되었다. 그는 수색대로 배치되어 창설 작업을 하며 사단 사령부에 대한 경계 임무를 수행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북한군의 9월 공세를 낙동강방어선에서 저지하고 있을 때, 이명수 일병이 소속된 수색소대는 9월 1일에 작전지역 내로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3판-1면-108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72-ㄲ-050)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