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李明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병
  • 군번 : 7901330
  • 전몰일자 : 19500904

공훈사항

이명수 이병은 출생 일자 및 출생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그는 6·25전쟁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몰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이병은 1950년 6월경 입대한 후 제8사단 제10연대에 배치되었다.
이 이병의 입대 전 제8사단 제10연대는 1950년 6월 26일과 27일에 제21연대의 증원이 축차적으로 도착함에 따라 주문진 탈환을 위한 반격을 준비했으나, 적의 공격으로 방어선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철수하고 대관령으로 이동, 강릉 탈환을 계획하여 1950년 6월 30일 포 1개 중대의 지원 사격 하에 후퇴하는 북한군을 추격하여 격퇴하고 포위 공격 또한 실시하였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원주군 방면으로 퇴각 명령을 받아 철수하려는 도중 적이 횡성을 점령하여 평창으로 진로를 변경하고 1950년 7월 2일 제천에 도착하여 정비하였다. 제8사단은 제천을 향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도로상의 교량을 폭파했고, 집결과 정비를 위해 충주지역으로 이동을 실시하였다.
1950년 8월 1일 이른 새벽부터 북한군 제12사단은 안동 동측으로 우회하여 안동을 습격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이에 안동교를 파괴하였지만, 북한군은 안동읍에 집결하였다.
북한군은 이후 1950년 8월 7일 새벽 2시부터 각종 포의 엄호사격에 힘입어 야간공격을 가했다. 제8사단 제10연대는 입암, 기계 방면, 용마산 방면으로 끊임없이 침투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주저항선을 설치, 방어진지를 구축하며 진압하는 데 많은 노력을 경주했다.
경상북도 영천군의 보현산 부근의 전투는 피아간에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 북한군은 1950년 8월 20일 기계, 안강 일대를 지속해서 위협하였고 제8사단 제10연대가 위치한 영천 북방에 또한, 강압을 가했다. 제8사단은 주저항선에서 끊임없이 저지하였지만 1950년 9월 4일 계속되는 압력에 지휘소를 선천동으로 이동, 철수하였다.
곧이어 제8사단은 평천동으로 이동을 완료하였고 운주산에서 내려오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해 입암-영천간 도로를 봉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 이병은 1950년 9월 4일 전투 중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이병의 공적과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유해(43묘역-10판-136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58-ㄱ-014)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