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李明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5704120
  • 전몰일자 : 19501005

공훈사항

이명수 이등중사는 전라북도 진안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그는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고 조국에 헌신하고자 1949년 12월 중순 육군에 입대하였다. 당시 38도선 일대에서는 북한군의 도발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후방지역에서도 침투한 북한의 무장공비와 국내의 공산주의자들이 연결된 소요사태가 곳곳에서 발생해 혼란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수도사단에 배치되었다.
이명수 이등중사가 서울의 주요시설경계에 임하고 있던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38도선에 배치된 장병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T-34전차를 앞세워 공격하는 북한군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북한군은 6월 27일 저녁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6월 28일 새벽 서울에 진입하였다. 이 이등중사는 소부대 단위로 분산된 채 삼송리를 거쳐 행주로 철수해 한강을 도하하였다. 이어 김포공항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과 격돌하였다.
이명수 이등중사와 사단 일부 병력은 오류동 일대에서 북한군을 저지한 후 7월 3일 한강방어선이 무너지자 지연전 및 재편성을 병행하며 낙동강방어선까지 철수하였다. 북한군 제12사단은 8월 9-12일 사이에 청송-죽장-기계 축선으로 공격하여 기계와 포항을 점령하였다. 이 이등중사를 비롯한 장병들은 16일 안강 북쪽 양동리 지역으로 투입되어 북한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사력을 다해 기계를 탈환하였다.
북한군의 9월 공세가 시작되자, 그는 9월 4일 경주 북방에 있는 호명리와 곤제봉, 무릉산 일대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여 북한군을 물리쳤다.
이 이등중사와 사단 장병들은 인천상륙작전에 힘입어 16일부터 퇴각하는 북한군을 낙동강전선에서 도평-영양-춘양-영월-평창-속사리 방향으로 추격해 10월 1일 하조대 부근 38도선을 돌파해 북진작전에 돌입하였다. 그는 전투를 수행하는 동안 삶과 죽음의 감각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조국을 우리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신념만큼은 누구보다 투철했던 이명수 이등중사는 1950년 10월 5일 원산 부근 전투에서 퇴각하는 북한군의 기습사격을 받아 장렬히 전사하였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위패(35판-1면-196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셔 살신보국정신을 기리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명비(003-ㅂ-08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