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수(李明洙)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804072
  • 전몰일자 : 19501106

공훈사항

이명수 이등중사는 1926년 6월 9일에 강원도 춘성군 진남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12월 25일, 강원도 춘천의 제8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6사단이 1949년 2월 22일에 청주에서 원주로 이동할 때, 그는 제6사단 직할부대인 공병대대로 전속되었다. 그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춘천에 위치하며 제7연대를 직접 지원했다.
제7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춘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6월 30일에 사단에 합류하여 이후 원주를 거쳐 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다. 그리고 8월 1일에 낙동강방어선으로 이동하여 8월과 9월 동안 북한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고 9월 16일부터 시작된 반격작전에 참가했다. 이명수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는 제7연대 장병들과 함께 행동하며 장애물 거부 임무를 수행했다.
제6사단은 반격작전 시 신녕에서 출발하여 함창-문경-충주-원주-횡성-춘천 방향으로 북한군을 추격했고, 10월 6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그리고 10월 8일에 화천을 점령했고, 이후 김화-금성-신고산-덕원-마식령-양덕 방향으로 북진하여 19일에 성천(평양 동북방 45km)을 점령했다. 이후 21일에 진격 방향을 바꾸어 순천-개천-희천 방향으로 공격했다. 당시 공병중대는 부대의 선두에서 장애물 개척 임무를 수행하여 제7연대의 진격속도를 증가시켰다.
제7연대 장병들은 희천에서 부대정비 후 10월 24일에 유엔군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 시에 온정리를 거쳐 초산 방향으로 공격했다. 10월 26일은 초산을 점령하고 압록강까지 진출했다. 이때 적유령 산맥 일대에서 은거 중이던 중공군들이 사단의 후방을 완전히 차단했다. 사단 장병들은 겹겹이 쌓인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에 이명수 이등중사가 소속된 공병중대도 130km가 넘는 헌준한 산길을 따라 적 포위망을 돌파하여 11월 1일에 개천에 도착했다.
제6사단은 개천 집결지에 주둔하면서 중공군의 침투 교란에 대비해 주변지역에 대한 수색작전 활동을 강화했다. 이명화 이등중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11월 6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중공군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 끝에 격멸했다. 이날 그는 선두에서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수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2-ㅎ-00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