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쇠(李明釗)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327359
  • 전몰일자 : 19500625

공훈사항

이명쇠 일병은 전라북도 완주군 초포면에서 출생하였다(출생 일자 미상). 이 일병의 소속 부대와 군번, 그리고 전사 일자를 고려할 때 이 일병은 1950년 1월경에 입대 후 제7사단 제1연대에 배치되었다.
1950년 7월 5일에 제7사단이 해체됨에 따라 제1연대는 수도사단에 편입되었고, 동년 10월 25일에 제9사단이 창설될 때 연대의 제2대대가 제9사단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제2대대 소속이었던 이 일병은 전후 행정처리 과정에서 소속이 제9사단 제30연대로 정리되었다.
이 일병이 입대할 당시, 제7사단은 적의 주공 방향으로 판단된 의정부 축선의 양주군 적성에서 사직리까지 47km 정면의 38도선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사단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동두천 축선에 제1연대를, 포천 축선에 제9연대를 배치하고 있었다.
이에 북한군은 동두천 축선에 제4사단과 제203전차연대 1개 대대를, 포천 축선에 제3사단과 제105전차여단(-)을 투입했다. 제7사단은 북한군의 T-34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무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병력 면에서는 7배, 화력 면에서는 18배나 우세한 적과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38도선 상의 대부분 방어선이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북한군은 전투 첫날 오전에 초성리를 돌파해 동두천으로 진격했다. 아군 일부 부대에서는 대전차특공대를 편성하여 육탄공격을 시도했으나 중과부적이었다.
결국 제9사단 장병들은 주저항선인 동두천 북쪽 소요산 일대의 진지로 철수하였고, 남하하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면서 진지를 사수하며 북한군의 보전협동부대를 저지하였으나 서측으로 우회한 북한군의 위협을 받아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제9사단은 탄약을 재보급받지 못한 상황에서 수십 대의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총공격을 받았다. 이에 소요산 일대의 주저항선이 돌파되기 시작했다. 사단은 10시간에 걸친 혈전에도 불구하고 동두천 방면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이 일병은 전투 중 적탄에 맞아 1950년 6월 25일 안타깝게도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쇠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66-ㄲ-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 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