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섭(李明燮)

  • 군별 : 경찰
  • 계급 : 순경
  • 군번 :
  • 전몰일자 : 19510828

공훈사항

이명섭 순경은 1931년 8월 9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에서 출생했다. (경찰 입문 일자 미상). 그는 전몰 당시 전북도경 전주경찰서 소속으로 재직 중 완주에서 전사했다.
1950년 6월 28일 서울을 점령하고 7월 4일 한강 방어선을 돌파한 북한군이 파죽지세로 남진하자 전주경찰은 전주-곡성, 전주-완주를 잇는 주요 보급로 경비, 주요 시설 경비, 피난민 이동 통제·구호, 오열 색출 임무를 수행했다.
북한군은 7월 18일 강경을 점령하고 이어서 7월 20일 곡성을 점령했고, 그 중 일부 부대는 김제로, 일부는 전주로 남진함에 따라 전북도경은 이날 남원으로 철수했다. 7월 31일 진주가 함락되자 군경부대는 마산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제6사단에 대비하기 위해 경남·전남·전북의 경찰병력 4,000명으로 전투편성을 한 다음, 지휘소를 함안군 군북면에 두고 미 제25사단, 한국 해병대와 합동으로 적과 대치했다.
8월 하순이 되자 경찰부대는 적의 최종공세에 대비하여 진동리지구에 경남경찰, 전남경찰을 배치하고, 함안지구에는 전북경찰을 배치하여 미 제25사단의 방어진을 보강했다. 또한 의령 방면에서 침공하는 적 제7사단에 대비하여 전북경찰 1개 대대를 함안군 법수면에 배치하고, 미산령과 전투산에는 전북경찰독립대대와 전남경찰 2개 중대를 배치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9월 16일 국군과 유엔군이 총반격을 개시함에 따라 경찰도 경찰관서 수복작전에 나섰다. 전주경찰은 9월 17일 함안에서 출발하여 10월 초 전주경찰서를 수복하고, 지역 내 치안유지활동을 강화하며 잔적소탕작전을 전개했다.
국군·유엔군의 총반격으로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은 가까운 산지로 들어가 공비들과 합류하여 게릴라 활동을 전개했다. 이에 치안국 비상경비총사령부는 공비섬멸 작전기간(1차: 1951.3.10-4.10, 2차: 1951.4.15-5.5, 3차: 1951.7.15.-8.15)을 설정하여 전국적으로 공비섬멸을 하도록 했다. 이 순경은 제1-제3차 공비섬멸작전에 참가하여 공비섬멸에 크게 기여하였다. 며칠 후 8월 28일 완주에 대규모 공비들이 출현하여 치안을 교란하며 양민학살과 약탈행위를 자행하자 전주경찰이 완주에 투입되었다. 이 순경은 공비들을 소탕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공비가 쏜 총탄에 의해 장렬하게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섭 순경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097-ㄱ-086)에 이름을 새겨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