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석(李命錫)

  • 군별 : 육군
  • 계급 : 하사
  • 군번 : 1705261
  • 전몰일자 : 19510423

공훈사항

이명석 하사는 1925년 3월 30일에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9년 2월 중순, 충북 청주의 제7연대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 예하 대대로 배치되었다. 이후 제6여단이 5월 12일부로 사단으로 승격할 때, 그는 제7연대에서 제6사단 직할부대인 수색대로 전속되었다.
북한군은 1950년 6월 25일에 전 전선에서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당시 제6사단은 춘천-홍천 북방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3일간 저지하고 횡성-원주로 철수했다. 이후 사단은 6월 30일에 원주-충주-문경-함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지연전을 수행했고, 8월과 9월에는 낙동강방어선에서 두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총공세를 격퇴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이에 제6사단은 함창-충주-원주-춘천 방향으로 공격하여 10월 5일에 춘천 북방의 모진교에서 38도선을 돌파했다. 계속 공격하여 10월 23일에 평북 희천을 점령했다. 국군과 유엔군은 10월 24일에 압록강을 향한 1차 총공세(일명 추수감사절 공세)와 압록강과 두만강을 향한 2차 총공세(일명 크리스마스 공세)를 실시했으나, 그때마다 중공군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38도선으로 철수했다. 당시 제6사단은 12월 11일에 전곡-동두천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여 추후 예상되는 중공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당시 수색대는 항상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적정을 수집하여 사단에 보고하거나 후방교란작전을 실시했다.
대규모 병력을 이룬 중공군은 1950년 12월 31일 야간에 총공세를 감행했으나, 국군과 유엔군은 평택-삼천선에 저지하고 반격으로 전환했다. 당시 제6사단은 문막 북쪽의 판대리 일대에서 2월 12일에 시작된 중공군의 2월 공세를 격퇴하고, 3월 22일부터 북배산-수덕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하여 화악산을 탈취했다. 이후 사단은 계속 공격하여 4월 21일에 사창리까지 진격했으나, 4월 22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4월 공세로 후방이 차단되면서 사창리 일대에서 큰 피해를 받고 4월 23일 야간까지 가평 부근으로 철수했다. 이명석 하사가 소속된 수색소대는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중공군이 곧 공격할 것이라는 정보를 사단에 보고했으나, 사단에서는 대응할 시간이 늦어 철수했다. 이에 수색소대도 적진에서 후방을 교란하며 철수하던 중, 4월 23일에 적 부대에 발견되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석 하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30판-4면-031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3-ㅅ-078)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