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복(李命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일병
  • 군번 : 0166007
  • 전몰일자 : 19510926

공훈사항

이명복 일병은 1927년 1월 25일에 경기도 광주군 광주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다시 38도선으로 철수했던 1950년 12월 8일, 경북 대구의 육군 제1훈련소로 입대하여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후에 제6사단 제7연대로 배치되었다.
이명복 일병은 부대로 전입했던 1951년 1월 중순, 제6사단은 중공군의 3차 공세(일명 신정공세)로 방어진지에서 철수하여 1월 6일에 장호원으로 이동하여 죽산리 일대에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있었다. 이후 유엔군의 반격과 중공군의 2월 공세, 그리고 유엔군의 재반격과 중공군의 4월, 5월 공세로 전선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제6사단은 5월 16일부터 시작된 ‘중공군의 5월 공세’를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격퇴하고 즉각적인 반격을 했다. 이때 이명복 일병이 소속해 있던 제7연대는 5월 20일에 용문산 방어진지에서 즉각 공격으로 전환하여 제2연대를 포위하고 있던 중공군을 공격하자, 포위 위협을 느꼈던 적들은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명복 일병이 소속된 제7연대는 5월 25일에 가평-춘천 사이의 산악지대인 계관산-북배산-지암리 방향으로 공격했다. 5월 28일에 경미하게 저항하는 적을 격퇴하고 구만리발전소(현 화천수력발전소)-병풍산을 연하는 캔자스선을 확보하고, 6월 5일부터는 철의 삼각지대를 포함하는 선을 확보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제7연대는 사단의 주공으로서 백암산에서 화천으로 뻗어 내린 643고지-887고지-992고지-취봉 방향으로 공격했다. 6월 10일까지 계속된 공격에서 연대 목표인 취봉을 확보하고, 등대리-단거리-수리봉을 잇는 고지군에 방어진지를 편성했다.
이후 유엔군과 공산군 사이에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선은 소강상태가 계속되었다. 이명복 일병이 소속된 중대는 방어진지 보강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던 중, 9월 26일에 수색작전을 나갔다가 적 침투부대를 발견하여 치열한 전투로 격멸했으나, 이날 전투에서 그는 용감하게 전투하던 중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복 일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전쟁기념관의 전사자 명비(044-ㅈ-041)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