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전몰용사 공훈록

이명복(李命福)

  • 군별 : 육군
  • 계급 : 이등중사
  • 군번 : 1106865
  • 전몰일자 : 19500913

공훈사항

이명복 이등중사는 1929년 3월 2일에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에서 출생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도 불구하고 정치 및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던 1948년 6월 1일, 충남 대전의 제2연대로 입대했다. 이후 연대는 1949년도에 제주도 4·3사건을 진압하고, 옹진반도로 출동하여 은파산·까치산전투에서 적의 도발을 억제하고 서울 용산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950년 6월 12일부로 제6사단에 예속되어 홍천으로 이동했고, 이곳에서 제8연대로부터 홍천 북방의 42km방어진지를 인수했다.
이명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기습남침했을 때, 육탄으로 저지하여 홍천 북방에서 3일을 지탱했다. 이후 6월 28일에 홍천에서 철수하여 원주-제천-단양-문경 축선에서 7월 한 달 동안 북한군의 공격을 지연하고, 8월 1일에 낙동강을 건너 용기동 일대에 방어진지를 점령했다.
제6사단은 8월 13일에 시작된 북한군의 대규모 공격을 위천 북방의 국통산∼324고지를 잇는 방어선에서 격퇴했으나, 18일 새벽에 적의 공격을 받고 13시간 동안 치열한 격전 끝에 방어진지에서 한때 철수했으나, 주간에 역습하여 저녁 8시경에 방어진지를 회복했다. 이후 8월 26일까지 국통산과 324고지, 169고지 일대에서 고지쟁탈전으로 적의 공격을 저지했으나, 8월 28일에는 더는 지킬 수가 없어 신녕 방면으로 철수하여 370고지에 배치되었다.
이명복 이등중사가 소속된 제2연대는 9월 1일에 적 1개 대대 규모가 공격하는 것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격퇴했다. 그러나 적들은 9월 2일 야간에 대규모 공세(일명 북한군의 9월 공세)를 시작했고, 9월 5일은 북한군의 격렬한 공격으로 영천까지 피탈되는 최대 위기의 순간이었으나 방어진지를 사수함으로써 극복했다. 이후 9월 8일에 적의 부분적인 공격을 받아 일부 지역이 돌파되었으나, 예비대를 투입하여 방어지역을 회복했다. 당시 적들은 대규모 공격에서 실패하고 간헐적인 공격을 하다가 9월 10일에 다시 대규모 공격을 했으나, 연대 장병들은 9월 13일까지 끈질긴 방어로 격퇴했다. 이날 전투에서 그는 분대장으로서 용감하게 진두지휘하다가 적의 총탄에 장렬히 전사했다.
정부는 호국의 별이 된 故 이명복 이등중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위패(27판-6면-002호)를 국립서울현충원에 모시고 있다. 전쟁기념관은 전사자 명비(040-ㅍ-036)에 이름을 새겨 명복을 빌며, 그의 나라사랑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